신과 함께

 몇 달 전, 주역을 보러 갔다. 주역 선생은 종이에 내 생년월일시를 받아 적고 한자로 뭔가를 유려하게 써 나가더니 펜을 딱 내려놓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요컨대 나는 무당 팔자라고 했다. 무당 팔자란 꼭 무당이 되어야 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그만큼 기민하고 근심걱정이 많은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그런 사람은 종교를 가지는 편이 정신건강에 좋은데, 주역 선생의 말에 의하면 내가 신을 안 믿는다는 것이다. 엇 어떻게 알았지? 종교 문제로 엄마와 갈등했던 과거를 맞추려나 싶어 바싹 다가앉았다. 주역 선생이 말했다.
 “왜냐, 네가 신이기 때문이다.”
 뭐요? 하마터면 소리 내 웃을 뻔 했다. 웃겨서 터지는 웃음이 아니라 당황해서 감추려는 웃는 웃음. 나는 간신히 웃음을 삼키고 생각해둔 몇 가지 질문을 했다. 잘 쓰지도 못하는 소설을 계속 쓰고자 하는 것이 맞겠느냐고 묻자, 손기술이 있는 사람이니까 하고 싶은 것을 하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듣고 싶은 이야기도 들었고 그만 가려는데 주역 선생이 악수를 청했다. 그리고는 소설을 쓴다면 현실의 일을 쓰지 말라고 덧붙였다.
 “신과 함께 같은 걸 써야 돼.”
 제가요? 대체 어떻게요…… 나는 진짜 웃겨서 웃어버렸다.
 
 
 나의 태명은 예성이었다. ‘예수님의 성품’의 앞 글자를 각각 딴 이름. 아들이었다면 나는 여지없이 예성으로 불렸을 것이다. 사람은 이름 따라 간다는데, 내가 예성이었다면 정말 신과 함께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고맙게도 엄마는 예성이라는 이름을 고집하지 않고 기쁠 희 자와 참 진 자를 쓰는 희진이라는 이름을 새로 지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사람이 되라는 의도였다지만, 의도가 아니라 이름대로, 나는 자신의 기쁨만이 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다. 엄마처럼 교회에서 내 기쁨을 일말이라도 찾았다면 거기 남았을까? 하지만 불행했다. 이를 깨달아버렸던 십대 내내 나는 엄마와의 종교전쟁을 치러야 했다.
 나는 이야기에서 내 기쁨을 찾았다. 엄마와 대판 싸우고 문을 닫아 건 방에서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들었다. 그 속에는 이야기가 있었다. 나를 기쁘게 하는 이야기도 내 기쁨, 나를 슬프게 하는 이야기도 내 기쁨이라는 것을 알아 갔다. 나는 이야기 안에서만 행복했다.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아마 그때부터 좋아하는 이야기를 흉내 내며 글을 끼적이기 시작했던 것 같다.
 종교전쟁은 휴전에 돌입했다. 스무 살이 되고, 나는 군말 없이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휴전의 암묵적인 조건이었다. 엄마는 내가 대예배에 출석하기만 한다면 교회 내 봉사활동(성가대, 청년부 예배, 주일학교 교사)을 강요하지 않았고, 나는 엄마 앞에서 하나님을 부정하지 않았다. 전에 없는 자각도 휴전에 한몫 했다. 나는 부모 명의로 학자금을 대출 받아서 대학교에 다녔고…… 상당한 채무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채무를 완전히 이행한 것은 스물여섯 살 때였다. 동등한 위치에서 제2차 종교전쟁의 선방을 날려볼 법도 했다. 그러나 그때 나는 더 이상 교회에 나가지 않았다. 엄마의 교회가 있는 고향을 떠나서 서울에 살고 있기 때문이었다. 난공불락 같았던 종교 문제는 아주 간단히 해결되었다. 물론 엄마는 일요일마다 변함없이 전화를 걸어왔다. 교회 갔니. 당연히 갔지. 설교가 어땠니. 하나님을 기쁘게 하라지. 부활절 주간에는 삶은 달걀이 맛있다는 일화도 덧붙였다. 그쯤 들으면 엄마는 안심하고 성경봉독대회에서 암송을 다 해 뿌듯하다는 등의 자랑을 했다. 나는 차츰 생각하게 되었다. 엄마에게 교회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내가 한글을 떼고 제일 먼저 읽은 책은 성경이었다고, 엄마는 이야기하곤 했다. 나도 그림책 판형의 어린이성경을 기억한다. 예수님이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수천수만의 사람들을 먹이는 기적이라든가 예수님이 물 위를 걷는 기적 따위의 이야기를 소리 높여 읽는 내 목소리를 엄마가 테이프에 녹음하던 것도 기억난다. 나는 그것이 좋았다. 예수님이 등장하는 모험담이, 모험담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엄마는 그 이야기 가운데 신이 있다고 믿었기에 성경을 읽혔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믿은 신은 이야기였다. 같은 성경을 읽는 우리의 차이였다.

 최근에 내가 인터뷰와 기록으로 참여한 책이 출간되었다. 내 이름이 들어간 첫 책이었다. 책 한 권을 엄마 집으로 보내고, 며칠이 지나서 잘 읽었다며 하나님의 사랑이 느껴진다고 이야기하는 장문의 카톡을 받았다. 나는 엄마에게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 다 읽었어? 네가 쓴 것만 찾아 읽었다면서 웃더니 엄마는 뜸을 들이고 말했다.
 “안 한다 생각했는데, 네가 하는 일도 사랑인 것 같아.”
 서른두 살, 나의 신을 엄마는 처음으로 믿어 주었다.

 그렇다 해도 나는 교회가 말하는 신을 믿지 않는다.
 하지만 엄마가 믿는 신을 믿는다. 엄마의 이야기를.
 
 
 “신과 함께 같은 걸 써야 돼.”
 소설이 영 안 써지면 어김없이 생각나는 말이다. 내가 신과 함께 같은 걸 쓰지 않아서 안 풀리는 걸까? 정녕 그렇습니까? 네? 나의 신은 말이 없다. 신과 함께는커녕 당장 두 사람이 등장하는 단편소설을 쓰면서도 쩔쩔매고 있는데 제가요? 대체 어떻게요…… 깜박이는 커서에 대고 반문해 봐도 나의 신은 말이 없다. 지금 내가 아는 것이라곤, 신과 함께 혹은 성경을 읽은 사람이라고 해도 신과 함께 혹은 성경과 같은 이야기를 쓸 수 없다는 진실이다. 그 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쓸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별 수 없다. 안 써지면 안 써지는 대로 소설의 끝까지 가 보기로 한다. 이야기라는 신과 함께. 그렇게 쓴 소설을 엄마가 읽는다면 뭐라고 말할까? 나는 이미 알고 있다.
 
 

견과류

밤·호두·잣 등이 이에 속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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