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질 이야기

나는 봄에 태어났다. 그래서 보메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고, 이 이름은 내 생의 수많은 이야기의 시작, 그리고 마지막이 될 것이다.

나는 사진을 찍는 사람이다. 아무도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았을 때, 세상에 나 혼자 남겨져 있었을 때, 그때부터였다. 손에 다 잡히지 못하고 손가락 사이로 새어 나가는 이야기들을 어디에라도 꾹꾹 눌러 담고 싶어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내 사진들은 나의 이야기가 되고, 또 누군가의 이야기를 담는 그릇이 되었다. 나는 카메라 너머의 세상에 말하고 있다. 끝없는 이야기들을 전하고 있다.

나는 말하고 있다.
말하고 싶다.
때론 어디에라도 크게 외치고 싶다.
나는 아직 살아있다고, 살아가고 있으며, 또 살아내고 있음을.

언제부터였는지는 알 수 없다. 남아있는 기억이라고는 언덕 위에 있는 작은 아파트에 살았던 대여섯 살의 내가 죽음을 생각하며 헛구역질을 하던 순간이다. 굳게 잠겨있던 유치원 정문을 보고 겁에 질려 울면서 집에 돌아가던, 어둠이 내려앉은 집에 혼자 남아 누군가 문을 두드리면 작디작은 손으로 작은 코와 입을 틀어막고 숨을 참아내던, 어린 날의 나. 아마 나의 지독한 우울증은 그때부터였을 지도 모르겠다.

자라난 몸의 일부분처럼 우울은 나와 함께 자라나 나를 점점 집어삼켰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길게 늘어진 그림자마냥 짙게 드리워진 우울은 나를 심연으로 끌어당겼다. 다니던 학교를 더 이상 다닐 수 없었고, 집 밖으로 나갈 수도 없었으며, 천장에 달린 낡은 형광등을 켤 수도 없었다.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다. 내가 어릴 때부터 죽음을 두려워했던 이유는 그만큼 죽음이 나에게 빨리 찾아오려는 신호였다고 생각했다. 집 한구석에 나뒹굴던 전깃줄을 벽장에 단단히 묶었다. 전깃줄에 둘러싸인 작은 구멍에 머리를 구겨 넣었다. 벽장 선반에 삼십 여분을 그대로 앉아 있었다. 마지막으로 숨을 쉬고 허공에 발을 디뎠다. 알 수 없는 비명을 들었다. 분명 눈을 감고 있는데도 눈이 쓰라릴 정도로 부셨다. 버둥대던 발끝으로 벽장에 쌓여있던 가방들이 걸려 그것들을 짓밟고서야 거칠게 숨을 몰아쉴 수 있었다.

아직도 그 순간을 생각하면 뒷목이 뻣뻣해지고 온몸이 굳는다. 굳은 손가락을 간신히 움직이며 글을 써내려가고 있다. 살아있지만 살아있음에 감사하지는 않는다. 올해가 끝나면 지독한 항우울제를 먹은 지도 일 년이 된다. 그간 종종 우울에 빠져 정말 죽을지도 모르겠다고 썼던 일기들은 다시 열어보지 못하겠다. 이 이야기를 끝으로 나의 우울을 저 멀리 어딘가에 버려둘 것이다. 그것들은 나를 지독히 쫒아오겠지만 나는 도망갈 것이고, 도피할 것이다.

남은 나의 삶을 나는 모른다. 그래서 살아갈 것이다. 죽지 못했으니 살아가는 게 어쩌면 당연할지도. 아니 당연하지 않다. 삶은 당연할 수 없다. 단언할 수 없고, 단념할 수도 없다. 이 삶 자체가 나의 이야기다. 나는 말하고 있다. 말하고 싶다. 때론 어디에라도 크게 외치고 싶다.

나는 아직 살아있다고, 살아가고 있으며, 또 살아내고 있음을.


보메

삶을 살며 이야기를 찍습니다.

instagram/easethesea
easethesea.tumbl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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