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드리는 이야기

새벽 다섯 시 반쯤 엄마가 깨우는 소리에 눈을 희끄무레하게 뜨니 예정되었던 슬픔이 날아왔다.
허둥지둥 광주로 내려갔더니 할머니는 없었고, 고모의 곡소리가 나를 맞이했다.
만사가 다 시끄러운 기분이었다. 고모는 아빠를 보자마자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때로는 “엄마, 엄마” 하며 울었고, “안돼. 이제 아프지마. 잘 가, 엄마. 엄마.” 하며 울었다.
또는 “이제 우리 엄마 못 본다. 어떡하지? 어떻게 해.” 발을 동동 구르며 몸으로 울었다.

아빠가 우는 것을 본 것은 삼십일 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도통 갑자기 ‘웬 웃음소리?’ 싶었는데 그 또한 소리 내서 운 것이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이삼년 전부터 할머니의 병세가 악화되면서 예정된 아니 기다린 슬픔이었다.
듣자마자 든 생각은 ‘헉 진짜?’였다. ‘말도 안돼.’는 없었다.
슬픔에 대한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엄마는 아빠에게 “당신도 이제 나랑 똑같네. (고아야.)” 라는 말을 건넸고, 아마도 조금이라도 웃자고 하는 소리였겠지.
엄마의 차가움이 모두 나에게로 왔을까봐 그것도 무서웠다.

나는 소리 내서 울기는 힘들었다.
할머니의 유일무이한 ‘오메 내 강아지’인 내가 소리 내어 통곡하기란 여간 쉽지 않았다.
나를 보는 사람들은 저마다 “많이 울었어? 왜 더 많이 안 울고?” 라는 말을 덕지덕지 보탰다. 참, 무심하기도 하지.
슬픔에는, 그리고 슬픔에 대처하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건데. 꼭 오열해야만 슬픔의 크기를 잴 수 있는 건 아닐 건데.

광주답게 장례식장에서는 젓갈 낙낙한 김치와 실한 홍어 살점들이 나왔고, 김치는 우리집 비비* 김치보다 맛있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지 꼬박 일주일이 된 오늘은 새벽에 눈을 떠서 가만히 할머니가 나를 맞이하던 순간, 왜소한 몸, 목소리, 말투, 억양을 하나하나 떠올렸다.
뽀글뽀글한 머리, 화려한 셔츠, 구부정한 허리, 뒷짐 진 손, 빛바랜 보라 고무 슬리퍼, 할머니 집 마당… 줄에 걸린 쓰다 만 수건들.
“어미이이! 내 강아지 왔는가! 오메, 우리 강아지가 돈을 다 버니라 고생을 하네.”

내 즐겨찾기 목록에는 아직도 할머니가 세 번째에 있다. 삼우제쯤에서야 인지하고 있었는데 지우지 않고 있다.


잘 보내드리는 게 어떤 건지 잘 모르겠다. 염을 할 때도, 발인을 할 때도, 분향소에서도 ‘할머니, 잘 가’만 속으로 되뇌었다.
꼬박꼬박 커피도 챙겨마셨다.
잘 보내드리지 못 했다. 삼우제도 치르기 전에 온갖 슬픔에 파묻힐 것 같아서 도망치듯 서울로 올라왔다.
이 글을 쓰면 잘 보내드릴 수 있을까? 이기적인 마음에 글로도 남겨보는데 잘 모르겠다.

장례를 치르고 잠깐 만난 친구가 “야! 영화 <코코> 봤어? 거기 장례 문화가 진짜 멕시코에 있는 문화더라!” 라고 하는데 눈물이 슬금슬금 올라왔다.
그 때도 울지는 못 했지. 안 울었지. 엉엉 잘 울었으면 잘 보내드렸다고 생각했을까? 할머니, 우리도 매해 코코처럼 만날까?

할머니가 소리 내서 대답해주면 좋겠다.


이노

종종 영화에 빠지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영화를 주제로 논문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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