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지 않으려고 사과를 주웠다

 초록색 사과를 새겼다. 세 번째 타투다. 내 탄생화는 하얀 사과꽃이라서. 하얀 사과꽃 보다는 초록 사과가 좋아서. 담뱃불 자국이 싫어서 덮었다. 흉터가 싫었던 것이 아니라 흉터를 볼 때마다 떠오르는 기억들이 싫었다. 학교폭력의 흔적은 인생의 반이 지나고 나서도 지워지지 않는다.

 트라우마 치료를 받고 있다. 정신과에서 약물치료를 받고, 일반 상담을 받고, 그룹 치료를 받고, 그러다 몸에 이상이 생겨 신경과에 갔다. 신경과에서는 뇌전증이라 판정받았지만 이상 뇌파가 잡히지는 않았다. 항경련제 처방해준다. 하지만 전혀 차도를 보이지 않는다.
 역시 마음의 문제라고 생각해본다. 구글에서 영문의학저널을 찾아보면 뇌전증으로 판정받는 환자의 30%가 사실은 심인성 비뇌전증 환자인 경우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나도 그런 것이 아닐까 자가진단을 한다. 하지만 정신과 선생님은 신경과 약도 빼먹지 말라고 한다.
 얼마 전에는 안구회전증도 나타났다. 그것을 결여발작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인터넷에는 참 많은 것이 나와 있다. 이제 많은 병들이 오랫동안 내 몸과 정신을 지배해서 나도 애인도 어느 정도 돌팔이 의사가 되었다.

 첫 번째 타투는 두 여자가 바다로 달려가는 모습이다. 라인타투를 전문으로 하는 타투이스트에게 의뢰한 도안이었다. 퀴어 영화 에서 바닷가에 놀러간 커플이 해변에서 사랑스럽게 뛰고 잡는 모습이 나오는데, 나는 그 장면을 아주 좋아한다. 우리 커플은 바닷가에 가면 가만히 앉아 파도 소리를 듣고 바다의 색과 냄새를 맡는 편이지만. 그런 귀여움이 타투이스트의 그림에서는 어떻게 바뀔지 궁금했다. 아름다운 여신들처럼 되었다. 바닷가의 여신들, 물의 여신들, 그래서 나는 첫 타투가 아프지 않고 간지러웠는지도 모른다.
 두 번째 타투는 의뢰한 도안은 아니었고 나의 감성과 닮은 도안을 고른 것이었다. 나무 끝에 달린 나뭇잎을 향해 손을 뻗는 그림. 왼쪽 손목 위쪽에 새겼다. 나뭇잎을 향해 손을 뻗은 왼팔을 찍어 타투이스트에게 보냈다. 그가 좋아했다. 그의 인스타그램에 내 팔 사진이 올라갔다. 나는 또 다른 식물 그림을 새기고 싶다고 생각했다. 나는 식물이 좋다. 하지만 식물을 잘 죽이고 만다. 나는 동물을 사랑한다. 그것이 차이라면, 차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초록색 사과를 새기면서 가슴 위쪽, 목 바로 아래에 에로스와 프시케를 새겼다. 목 라인이 넓거나, 늘어난 티셔츠를 입으면 잘 보이는 위치다. 가슴에 하는 타투는 아프다고 했다. 그래서 실은 사과보다 이 도안을 먼저 새겼다. 아픈 걸 먼저 하자, 힘든 걸 먼저 하자, 맛없는 걸 먼저 먹자. 정말로 아팠다. 팔에 타투를 새길 때는 정말 아무 느낌도 들지 않았는데.
 나의 타투이스트는 얼마 전에 에로스와 프시케 도안을 아기 버전과 어른 버전으로 그렸다. 나는 귀여운 아기 버전을 선택했다. 애인에게는 말하지 않고 받은 타투여서, 집에 돌아왔을 때 애인은 당황했지만 며칠 뒤 슬금 만지기 시작했다. 우리를 닮았다고 했다. 우리처럼 귀엽다고, 볼을 부비고 있는 건지, 볼에 뽀뽀를 하고 있는 건지, 우리를 닮아서 마음에 든다고 했다. 응. 그래서 선택한 거야.

 다음에는 어떤 타투를 하게 될지 모르겠다. 나를 닮은 것, 너를 닮은 것, 혹은 우리를 닮은 장면, 혹은 기억하기 싫은 것을 지워버리는 무언가를 할 수도 있다. 분명한 중독이다. 나는 나쁘지 않은 중독이라고 생각하지만 누군가에게 위협이 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슬프겠지. 하지만 지금은 나의 행복을 위해 새긴다. 아픔이 아픔을 덮는다. 그건 좋은 일일까? 지금은 좋은 일이다.

 언제나 ‘지금’의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한다.
 그것을 ‘마이웨이’라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다면 나는 마이웨이다.
 나는 지금 아프지 않으려고 초록색 사과를 주웠다.


보라
@muzigaetokki

보라보라하며, 토끼 인형들과 살고, 시를 잘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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