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의 이야기들


노래를 가져와 듣는 습관은 언제부터였을까. 흘러나오는 곡 곁에 있다는 특혜로 듣는 게 아닌, 노래를 꺼내 내 쪽으로 가져와서 귀를 기울이는 습관 말이다. 시디를 사고, 산 시디를 꺼내 플레이어로 재생하는 순간, 당분간의 시간은 노래만이 사용할 수가 있다는 사실이 공간에 존재한다. 한 번에 여러 일을 할 수 있는 정신 사나움이 가능한 나에게는 각별한 시간이다. 독서의 시간과도 비슷하다.

‘노래를 듣는 것을 좋아함’은 ‘노랫말을 좋아함’과는 사뭇 다를지도 모른다. 둘 중 무엇이 어디에 포함하는지는 생각해 볼 일이다. 노래를 가져와 듣는 습관에서는 노래가 된 이야기를 읽는 행위가 중요하다. 이를테면 한 곡이 담고 있는 가사, 가사를 이루는 문장, 흔히 사비(サビ)라고 부르는 후렴구와 한 곡 안에서 반복되어야 하는 이유, 그리고 단어의 선택까지. 허투루 지나지 않고 굳이 생각해보고 궁리하며 노래를 읽고 있다.

즉 노랫말에 대해 사고하며 듣는 일은 ‘랜턴 퍼레이드’로부터였다. 거기에 더해 웹진 무구에서의 연재 ‘이 노래의 자초지종’을 통해 노래를 내게 가져와 듣는 습관이 만들어졌다. 회사원 시절에 연재 제안을 받았고, 매주 어느 요일의 아침에는 2호선에 올라타 글을 썼다. 생활의 좁은 틈에 엄지로 적어 내려간 글이었다.
짧더라도 글의 형태로 올리지 않으면 안 되기에 이미 좋아하는 곡을 끝없이 들었다. 다시 들리고, 다시 들리다 보니 다시 읽혔다. 하나의 곡은 한 덩어리의 이야기로서 내 안에 재차 존재했고, 그렇게 랜턴 퍼레이드식의 노래들은 그가 부르는 하나씩의 이야기가 되었다.
언제부턴가 랜턴 퍼레이드 노래가 갑자기 들려온다면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되었는데, 이는 마법 혹은 주문이다. 일어의 노랫말이 자연스럽게 읽히기까지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때론 멜로디에 스며들 수 있는 게 노랫말이기도 하다. 노래가 된 이야기, 이야기가 된 노래에 나의 생각을 더하고 싶어졌다.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 가능한 일이라면...라고 그녀가 중얼거린다. 이제야 무엇이 행복인지 알 수 있을 텐데...라고”

「夏の一部始終(여름의 자초지종)」 앨범 중 1번 트랙 「木の葉散る(나뭇잎이 진다)」중에서 첫 가사



가능한 일이라면…이라고 덧붙인 연유가 궁금하다. 멜로디는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 보다 강한 선율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첫 문장보다 서글프다. 때론 이런 가정은 내 현실에서도 불린다. 돌아가고 싶은 시절은 없지만, 지금의 눈으로 지난날을 돌아본다면 알아채지 못했던 행복이 눈에 들어올지도 모른다.


“무엇이 일어날지 모르고,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르고.
믿으면 이루어 주는 신 따위 있을 리가 없잖아.”

「夏の一部始終(여름의 자초지종)」앨범 중 1번 트랙 「木の葉散る(나뭇잎이 진다)」중에서 마지막 후렴부 직전의 가사



노랫말도 책과 마찬가지다. 내가 아는, 알 것 같은, 겪은, 겪었던, 겪을 것만 같은 구절들에 멈추게 된다. 그 자리에 덩그러니 서서 고개를 떨구었더니 보이는 건 내 그림자뿐일 때. 그렇게 노래의 어떤 자리는 내 자리가 되어 존재하게 된다.


“자 월요일 아침의 일을 생각해봐.
조용하게 흘러가는 시간을 잡고 싶을 거야.”

「夏の一部始終(여름의 자초지종)」앨범 중 6번 트랙 「なぜ泣くの(왜 울어)」중에서 첫 가사



청중을 상대로 불러 놓고 “월요일 아침의 일을 생각해봐”라고 말하는 노래는 아마 이 곡뿐이지 않을까. 나에게 월요일이라는 요일은 더이상 ‘닷새 일한 후 겨우 이틀 쉬고서 다시 일하는 날’의 의미로서 존재하지 않지만 월요일이라는 날의 감각은 좀처럼 달라지지 않는다. 그저 잡고 싶은 강도만 조금 느슨해졌달까. 실은 모든 시간이 그렇다. 잡고 싶지만 잡고 싶다고 말하기에는 삶에 미련이 많아 보여 말하기 싫다. 그래서 못난 요일인 월요일을 이용해서 말하는 게 아닐까. 랜턴 퍼레이드는 평일에는 직장을 다니며 일을 하고 있다고 들었다.


“꿈을 꿀 수가 없어. 지금 할 수 일을 그저 할 뿐.
꿈을 꿀 수가 없어. 지금 해야 하는 일을 그저 할 뿐.”

「夏の一部始終(여름의 자초지종)」앨범 중 6번 트랙 「夏の一部始終(여름의 자초지종)」중에서 후렴구



꿈꾸는 일을 저버리게 되었을 때에도 삶 앞에는 여전히 두 가지가 존재하는 걸까. 할 수 있는 일을 그저 하는 일과, 해야 하는 일을 그저 하는 일.
할 수 있는 일을 그저 하는 일보다, 지금 해야 하는 일을 그저 하는 게 더욱 힘겹게 읽힌다. 더군다나 꿈을 꿀 수가 없다니. 때때로 어둠 속에서 내 미래가 보이지 않고, 보기 싫고, 왜 봐야 하는지도 모를 때에 이 문장을 노래한다. 입을 벌리고서 말이다. 그런 하루가 있다가도 어느날에는 꿈을 꿀 작정으로 지금의 일을 그저 하고 있는 날이 있다. 빨리 나의 미래를 만나고 싶어 눈앞의 일을 하면서 꿈을 꾸는 날이다. 그런 다종의 하루하루를 겪으며, 그 어떤 날도 색칠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어느 쪽이 어둡고 밝고를 따지지 말자는 말이다. 지금 먹을 수 있는 것을 먹기도, 지금 먹어야 하는 것을 먹기도 하며 살고 있으니까. 오늘은 며칠 전에 사둔 식빵을 모조리 다 먹었다. 하루가 지나면 냉동실에 넣어야 했을 테다.


“모르는 거리에서 헤매는 듯한 기분이 되는 것은
동경에서는 간단한 거야.
점자 봉사에 힘쓰는 사형수
새벽에 기도하는 사람”

「魔法がとけたあと(마법이 풀리면)」앨범 중 7번 트랙 「水たまりは空の色(웅덩이는 하늘색)」중에서



나는 랜턴 퍼레이드를 만나기 위해 바다를 건너가서 나의 애정을 표해본 적도 있고, 전 세계 사람 중에서 (랜턴 퍼레이드와 그의 회사 사람들 제외) 가장 많이 그의 노래를 들은 사람일지도 모르지만, 결국 나는 그를 모른다. 어째서 이런 가사를 썼는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은 내내 존재하고 있다. 내 생활을 빌려서 노랫말을 읽어나가더라도 그가 이야기하는 것을 완벽히 알게 될 수는 없고, 평생 모르는 일이 슬프지 않다.


“언제나의 거리, 언제나의 역, 언제나의 길, 언제나의 얼굴. 그리고
언젠가의 꿈, 언젠가의 사랑, 언젠가 알게 돼, 언젠가 달라져.”

「魔法がとけたあと(마법이 풀리면)」앨범 중 8번 트랙 「たのしいしらせ(즐거운 소식)」후렴구



“언젠가 알게 돼. 언젠가 달라져”라는 가사는 내가 멋대로 번역했다. 제멋대로인 나는 듣고 싶은 대로 듣기도 한다. 언제나 (いつも이쯔모)로 부르다가 비슷한 단어인 언젠가 (いつか이쯔까)로 바뀌며 노래가 이어지듯이, “이쯔까 와카루(いつかわかる) 이쯔까 카와루(いつかかわる)”로 비슷하게 읽히는 두 단어가 한 문장 안에 있다. ‘안다’라는 뜻의 ‘와카루’ 다음에 비슷한 음절로 되어 있는 ‘변하다, 바뀌다’를 뜻의 ‘카와루’라는 단어로 매듭이 지어지는 노래. 나는 변하거나 바뀌다는 말보다 달라진다는 뜻으로 이 곡을 읽고 싶었다.
내내 ‘언제나’와 ‘언젠가’의 그 사이에서 살고 있다. 누군가의 이야기가 좋은 소식이 되기도, 나의 생활이 언젠가 이야기가 되길 바라며 말이다. ‘언제나’가 쌓이면 ‘언젠가’ 알게 될까. 알 수가 없다. 지금으로서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지금도 랜턴 퍼레이드 노래를 듣고 있다. 늘 듣던 노래가 다르게 들리는 건 일상적인 행운이다.
나에게 이런 습관을 선사해 준 무구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웹진 무구의 ‘언제나’와 언젠가’를 생각하며.
고마워요 무구.


아직 임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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