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구름 조각 속에서



잘 지냈나요. 자동응답기 같은 말은 하고 싶지 않았는데, 별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아 초조합니다. 끝까지 지퍼를 끌어 올린 패딩 안으로 턱을 집어넣고, 고인 눈물을 떨어뜨리지 않으려, 눈을 깜빡이지 않고 신호등 불빛을 쳐다보고 있어요. 짙은 안개 속에서 빨간 불빛이 뿌옇게 보여요. 잘 지냈어요. 한 밤중의 안개는 유독 무겁고 조용합니다. 하고 싶은 말을 안개 속으로 흘려보내며 당신과 안부 인사를 나눕니다. 말은 이토록 짧고, 남겨진 마음은 한없이 길기만 합니다. 실없는 웃음과 시덥잖은 말들 사이로 불어오는 침묵의 찰나마다, 당신의 얼굴이 안개 속에서 보일 듯 말 듯 해요.

당신과 함께 산에 오르던 날, 저는 산에 걸친 구름을 보고 무척 신이 났어요. 저기까지 올라가자, 구름 속으로 들어가 보고 싶어. 그렇게 말하며 저는 등산길에 난 작은 바위들을 폴짝 밟아댔고, 당신은 웃으면서 뒤따라왔어요. 한참을 올랐을까. 우리는 구름 속에 있어. 실망과 놀라움이 섞인 저에게 당신은 그렇게 말했죠. 상상했던 구름 속 하얀 풍경들은 없었어요. 무엇도 잡히지 않았어요. 그저 지금과 같은 짙은 안개 속에서 손을 쥐었다, 폈다 할 뿐. 지금처럼 그 날도 안개 덩어리에 당신의 얼굴이 가리워졌었죠.

무서워요. 제 앞에 당신이 서 있다는 것이 마치 거짓말이라도 될 것처럼, 당신의 모습이 흐려져 가요. 저는 당신 앞에서 결국 울먹거리고 말았어요. 제가 당신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른다는 사실이 사무치도록 무서웠기 때문이에요. 저 혼자 만들어 낸 안개 속에 홀로 서 있는 건 아닐까. 제 앞에 있던, 제 눈에 비친 당신은, 무엇이었을까.

당신의 이야기는 마치, 가까이 다가가면 사라져버리는 구름 같았어요. 이토록 멀리 떨어져 있을 때만 겨우 제 눈에 들려오던 당신의 이야기들. 제가 좋아한 당신의 구름은 겨우 그런 것이었어요. 제가 본, 제가 생각한, 당신과 저의 거리에서만 보일 수 있었던, 뽀얗고 부드럽게 흐트러져 있던 당신의 구름 조각들. 오직 제 눈에만 보이는 구름들. 당신이 내민 진심의 조각들이 저의 작은 마음에 갇혀버리고, 이제는 저만의 이야기가 되어서, 저 혼자 떠안은 이야기들이 버거워서 울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해가 뜨면, 이 짙던 안개는 거짓말처럼 사라져버리겠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안개는 모두 흩어질 거예요. 안개 속 희미했던 당신의 얼굴조차 저는 잊어버리고 말 거예요. 스스로의 이기심을 무서워했던 그 숱한 밤들과, 저의 작은 마음들, 지금의 간절한 바람들도, 따가운 햇살 속에서 모두 잊혀지고, 보이지 않게 될 거에요.

저는 울먹이면서, 지금 제가 들리느냐고 당신에게 물었습니다. 지금 이 곳에, 그 날 그 곳에, 당신이 서 있었던 것만은 진실이기를 바라면서, 간절히 믿으면 진실이 되기를, 그런 욕심을 품으면서요. 당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저는 그 날 당신이 서 있던 것이 진실이라는 것을 알아요. 잡았다 폈다 하는 제 손 사이를 감싼 안개들, 그 안개 사이로 잠깐 비추던 당신의 눈빛을 보았어요. 그 눈빛만은 잊지 않기를, 잊히지 않기를.


앤느

샤워하고 나온 순간과 담배에 불을 붙이는 순간을 좋아합니다. 당신의 이야기와 제 눈을 마주치는 순간을 사랑합니다.

이 글과 관련된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