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씨에게

<이야기되지 않아 이야기일 수밖에 없는 편지: M씨에게>



M씨,

당신에게 편지를 쓰는 것은 처음 같네요.
당신이 제게 책을 보내주었던 어느 날, 봉투의 상단에 쓰인 주소를 적어 두었습니다.
저 역시 당신만큼이나 이곳저곳으로 이사를 자주 다녔지만,
언제나 당신은 제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는 듯했습니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이사를 하실 거라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어디로 가시는지는 물어보지 않겠습니다.
그곳에서 얼마나 오래 머무르실 지도 묻지 않겠습니다.
‘않겠다’는 다짐은 늘 초라하지요.
‘하지 않겠다’는 말을 반복해 되뇌는 행위야말로
너무도 ‘하고 싶다’는 열망의 이면인 것을.

M씨, 제 책상 위에는 끝맺지 못한 편지가 여럿입니다.
저는 뒤늦게 도착하는 사람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꽤나 오랫동안 사로잡혀 있습니다.
사랑하는 이를 태운 기차가 저만치 멀어져 간 이후에야
숨을 몰아쉬며 역에 당도하는 이의 마음을 지나치게 자주 느끼는 것은 어쩌면
제가 지금껏 수많은 약속을 지키지 못해왔기에
습관처럼 발생하는 자책인지도 모릅니다.
환각처럼.

당신에게 편지를 쓰겠다고 여러 번 다짐했고, 편지지를 여러 번 구겼습니다.
하지만 제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전부 당신에게 전할 수는 없었습니다.
끝내 당도하지 못하는 말들이 있다는 것,
끝내 이야기되지 못한 이야기들이 있다는 것,
그것이 아마도 이 세계의 가장 큰 슬픔이 아닐까 합니다.

이 편지가 도착할 때 즈음이면
당신은 이미 떠난 뒤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우편함만을 남겨두고서요.
당신이 떠난 집 마당에 놓인 우편함을 비밀스레 열어보는 이는,
혹여 이 편지를 읽게 되는 이는 느낄까요.
제가 당신을 얼마나 그리워하는지,
얼마나 그리워하게 될지,
필연적으로 그러할 것임을 얼마나 강렬히 예감하는지를.

M씨, 저는 기뻤습니다.
당신이라는 우편함을, 서가를, 숱한 글자들을 경유해
당신의 이야기를 읽을 수 있어서요.
언제나 그러합니다.
한 시절이 생채기를 남기며 가고 다른 시절이 아무렇지 않게 시작될 때마다
당신이 부쳐준 이야기들이 아무렇지 않게 저를 살게 했습니다.

당신에게 건네진 무수한 낱장의 이야기들은
당신이 어디로 떠나든
우편함 속에 든든히 채워져 있을 것입니다.
그 이야기들은
이야기되지 않아서 이야기일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에 널리 읽히고 모두가 환호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건네지지 않은 혼잣말 같은,
당도하지 않은 편지 같은,
고여 버린 방백 같은 이야기들 말입니다.
이 편지가 그러하듯이.

M씨,
지금 저는 창문이 없는 방 안에 앉아 있습니다.
이 문장을 만약 읽으신다면, 웃으셔도 됩니다.
저는 이 편지가 하나의 창문이 되어줄 것처럼 굴고 있으니까요

실재하지 않는 또 다른 세계를 내면에서 구축하는 일,
그것은 M씨,
당신이 지금껏 고요하게 몰두해온 일일지도 모른다고 저는 짐작합니다.
편지를 씀으로써 마음 속에 창문 하나를 만드는 일 같은 것 말이지요.
또는, 어딘가에 글로 이야기함으로써 남게 되는 옅고도 선명한 흔적 같은 것 말이지요.
저 너머의 새로운 세계를 엿볼 수 있도록,
그 너머로 계절이 흐르도록,
그러나 스스로는 방 안에 정물처럼 앉은 채로.

한 친구가 말하더군요.
누군가의 얼굴에서 새로운 표정을 발견할 때
그를 다시 새롭게 사랑하게 된다고 말이지요.
M씨, 저에게는 당신의 페이지들이 그러했습니다.
지난한 삶의 편린들, 알 수 없는 누군가 남긴 단상들, 단편적인 이미지들이 줄곧 제게 당도했고,
그것들이 때로 더 이상 수신되지 않는 전화기처럼 여겨질 때에도
글자들을 붙잡고 잠들지 못하는 밤들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M씨,
당신이 있는 그곳에 이야기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펼칠 때마다 새로운 얼굴들, 새로운 표정들이 형형히 나타나는 어느 사진가의 내밀한 기록을 들여다볼 때처럼,
그리하여 매번 새로이 사랑을 시작하게 되는 사람처럼
저는 자주 달뜨곤 했습니다.

M씨,
당신이 이사를 간다 하더라도 이 우편함은 이곳에 남아있겠지요.
이야기되지 않아 이야기일 수밖에 없는 편지의 운명이 그러합니다.

이 이야기는 계속될 것입니다.
연대기 없는 역사처럼.
좌표에 없는 지역처럼.

그간, 감사했습니다.
제게 크고 환한 창문이 되어주셔서요.

– 온 마음을 담아.



리외

질문과 이야기, 속삭임을 좋아하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언제까지나).

@morningflw
chjviole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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