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이야기

1.
왜 나는 늘 늦을까.
지나가고서야 깨닫는다. 또 늦었다고.
돌이키기엔 이미 늦어서 진작 벌써 포기해버린다.

시작조차 하지 않으면 후회도 없을 거라고
그렇게 글 쓰는 것도, 이야기하는 것도, 말하는 것도 잃어버렸다.

매일 말을 하지만 사라져 버릴 말들 같다.

“잘 지내지?”
“응. 잘 지내고 있지.”

같이. 너무나 상투적인 너무나 무미건조한.
결론은 그다음부터 나온다.

“나 다음 달에 결혼해”
혹은
저번에 쩌번에 저저저번에 했던 그 어떤 이야기를 끄집어 물어온다.
그리곤 이렇게 이야기한다.

“잘 지내고~ 언제 한 번 보자”
그 언제 한 번이라도 보면 참 다행이겠지만 그런 경우는 드물다.

그게 너무나 당연하고 익숙해져 갈 때쯤 되면
어쩌면 그렇고 그런 어른이라는 사람의 일상일지도 모르겠다.


2.
나는 오늘, 평생에 가장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을 만났다. 그 사람은 매번 말할 때마다 주제가 바뀐다. 늘 했던 말을 또 하기도 하고 혼잣말인 듯 말을 걸기도 하고 때론 자신이 한 말을 뒤엎는 이상하지만 당연한 듯한 논리를 펼치기도 한다. 내가 듣지 않을 때도 끊임없이 자신의 할 말을 다 쏟아 부어야만 끝이 나는, 아니 끝이 아닐 때가 많다. 이야기에 있어서 굉장히 집요한 사람이다. 어쩌면 그 사람은 예상대로, 바로 우리 엄마다.

가끔 생각한다. 많은 사람의 다양한 생각들은 다양한 엄마에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닐까 하고. 같은 배에서 태어나도 너무나도 다른 위 혹은 아래의 사람과 그들의 이야기.
사람마다 어떤 화학성분이 작용하는 것일까?
어떤 호르몬이 자극되는 것일까?
첫째에게 말하는 엄마와 둘째 혹은 셋째 넷째, 그리고 막내에게 말하는 엄마는 다른 사람이다. 변화무쌍하다. 아들과 딸을 대함은 더하다. 그런 예측불허의 작용과 반작용 때문에 우리들의 생각은 달라지고 그 다른 생각들이 만나서 또 다른 생각을 낳는다.
사실 너무 다양해서 이제는 피곤해질 지경이 된 거 같다. 그러다가 문득 깨닫는다. 내 생각이 어차피 상대에게 온전히 전해지지 못한다고. 너의 이야기 또한 나에게 온전히 와닿을 수는 없다고.
그러다 보면 이야기를 하거나 혹은 하지 않거나. 그 중간 어디쯤으로 정착해버린다. 그렇게 하나씩 정리되고 쌓아가게 되다 보면. 나는 또 어느새 엄마 앞에 서게 된다.

매우 익숙한데도 늘 새롭다.

오늘은 엄마, 그 사람이 반성을 했다.
나에게 미안하단다.
나의 감사함은 엄마의 깊은 주름 속에서 삐져나오지 못한다.

미안함이 이상했다. 슬펐다.

언제부턴가 조금씩 반성을 해온다.
늘 자신의 이야기가 옳고 자신의 이야기만을 늘어놓던 그녀가 이제는 내 이야기를 듣는다.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온전히 들어본 적이 있던가.
간혹 때때로 이따금 간헐적으로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대체로 자주 매번 늘 그녀의 말에 아니라고, 잘못된 거라고
반박하기가 먼저 앞섰던 것도 사실이다.

그녀는 오늘 나에게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걸까.
우리는 이야기를 나눈 걸까.

안 이상하고 안 슬프고 안 새롭기 위해
다시 그 사람을 마주해야겠다.

늘 익숙하지만 새로운 그녀에게.


오구오구

가끔 빠르고 종종 느린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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